■ ‘김종원 - 퀀텀 스트록’展
동양-서양 과거-현재 아울러
우주·자연 향한 경외심 표현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이것은 글씨인가, 그림인가. 다천(茶泉) 김종원(67)의 작품을 보면 절로 이렇게 중얼거리게 된다. 그는 흔히 서예가로 불리지만, 전통적 의미의 서(書)를 벗어나 현대미술의 최전선에서 글씨의 미래를 모색해왔다. 경남도립미술관장으로서 미술 행정에 힘쓰면서도 서예의 현대화를 위해 미술과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곡신불사(谷神不死)’
그가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 제2전시실에서 개인전 ‘김종원- 퀀텀 스트록(Quantum Stroke)’을 연다. 토포하우스의 특별전 ‘문명 대전환기 언어풍경’ 시리즈의 첫 번째 전시로, 오는 14일까지 펼쳐진다. 지난 7일 전시장에 갔을 때, 개막일을 하루 앞두고 작가가 인부들과 함께 작품 설치를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도록 해설자인 이동국 서예평론가와 오현금 대표 등 갤러리 관계자들도 나와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벽면에 ‘신화- 통영신명(通靈神明)’ 연작 3편과 ‘Quantum Stroke- 곡신불사(谷神不死)’ 연작 2편, ‘Quantum Stroke- 풍신영가(風神詠歌)’ 연작 2편을 걸었다. 전시장 중간에는 대형 병풍 작 ‘하늘로 내리는 비- 춘야청우몽상전도(春夜聽雨夢想顚倒)’가 놓였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불가리(BVLGARI)’에서 주관한 컬러 전에 초대됐던 작품 영상도 빔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준다. 작품 제목만 봐도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고, 옛것과 지금 것이 섞였음을 알 수 있다. 조어인 ‘Quantum Stroke’은 붓을 휘둘러 만드는 일획(一劃·Stroke)이 우주 만물의 기초인 ‘양자(量子·Quantum)’와 같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자신의 일필이 우주의 본질에 가 닿는다는 오연함이 있는가 하면, 영성(靈性)을 지닌 자연에의 경외가 깃들어 있다. 부적이나 불화(佛畵)에 사용되는 적색 안료를 써서 신화 속 동물을 그렸고, 추상표현의 이미지로 선가(仙家)의 바람 신(風神)과 산골짜기 신(谷神)을 불러냈다. 반야심경에 나온 글귀 ‘전도몽상(顚倒夢想·앞뒤가 뒤바뀐 꿈)’을 빌려서 세상의 비바람을 표현한 작품은, 유가(儒家)의 선비들이 전유물로 여긴 글씨가 춤을 추는 형상으로 나타나 있다. “최치원의 풍류도에서 보듯 유불선(儒佛仙)이 방법은 다르지만, 세상의 본질에 가 닿으려는 목적은 하나이지요.” 지난 2009년부터 한국문자문명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작가는 인간이 내면의 풍경을 기록한 문자 원형을 탐색해왔다. 그에 따르면 상고시대 갑골문자(甲骨文字)의 형상은 문자에 언어의 소리가 들어오기 전의 모습으로, 자연의 영성을 담고 있다. 그는 문자의 3요소인 소리, 형태, 의미에 대한 고찰을 통해 현대 서예가 영성을 잃어버렸음을 자각했고, 문자 해체를 꾀하는 필획(筆劃)의 주술성으로 그 회복을 꿈꾼다. 키보드로 상징되는 기계 문명 시대에 그림과 글씨를 하나로 아우르는 붓의 광초(狂草)를 통해 그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일까. “문자 세계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아 미래를 바라보자는 것이지요.”
글씨인가, 그림인가… 끊임없는 서예와 미술의 경계 허물기 - munhwa.com
2021.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