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호리 붓, 문명(文明)의 창을 열다' 를 주제로 내건 (2009 문자 문명 전〉〉은 다음과 같이 총 5개의 섹션으로 나누고 있다. 즉 ▲ 현대서예 문자예술의 향방' ▲ 김경호 현대 사경(寫經)' ▲ 다호리 토기 & 창원문자사료 ▲ 경남서예 현재 ▲ '문자, 현대미술을 만 나다' 가 그것이다. 한마디로 문자를 주제로 서예와 현대미술은 물론 문자의 역사와 현재 를 동시에 한자리에서 종횡으로 다루고 있다. 이것은 장르통합, 하이브리드, 혼융 등의 이 름으로 이미 시각내지는 조형예술에서의 장르 넘나들기가 식상할 정도로 일상화된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또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은 물론 건축, 디자인 등 순수와 실용의 경계조차 없어진, 그야말로 예술에 있어 모든 경계가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때가 지금이라고 하는 입장에서 보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서예, 한마디로 바다 한가운데 외딴 섬' 처럼 역사와 미래, 동과 서, 서예와 미술, 내용과 조형, 일상과 예술, 예술과 정보 등 거의 모든 분야와 단절되어 있다. 시피 한 현실을 생각할 때 《2009 문자문명전》 그 자체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또 현대미 술은 물론 문학 철학 역사는 물론 종교에서 조차 서예 하면 괄호밖에 내 놓다 시피 하고, 관객 또한 그 해독의 난해함이나 기법과 조형실험 위주의 식상해하는 우리시대 서예문화 를 직시해 볼 때 이번 전시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그간 서예전시가 몇 몇 비엔날레 중심으로 전시영역 확장을 도모한 사례가 없지는 않았 지만 유독 공모전 중심으로 길게는 근 100년 짧게는 50년을 넘게 일방적으로 진행되어온 결과 다른 장르와의 혼융은 물론 역사와 현대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 듯 했고, 오히려 그것이 미덕인양 은연중에 생각하게끔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예는 본 래부터 내용과 조형을 하나로 칼과 돌, 붓과 종이는 물론 요즈음 자판중심의 디지털문자 문명에 이르기 까지 시서화각은 물론 문사철 유불선이 늘 하나로 일상과 순수예술을 넘나 들어왔지 않은가. 이런 입장에서 작금의 서예문화를 보면 그 본질과 떨어져도 너무 떨어 졌다는 것이다.
2.
앞서 본대로 〈〈2009 문자문명 전〉〉은 다호리 붓, 문명의 창을 열다'를 주제로 내건 데에서부터 붓이라는 도구를 문제 삼고 있다. 물론 붓이라는 것은 단순히 필사도구를 넘어 문자로 인해 만들어진 문명은 물론 문화의 총체를 지칭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언제부터 문자를 직접 쓰고 사용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고고유물로 볼 때 분명한 사실은 이미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한 초기철기시대 붓의 사용이 창원 다호리에서 확인된다. 즉 창원시 동읍 다호리 237-3번지 일대(사적 제 327호)의 다호마을 뒷산과 주남저수지로 이어지는 저습한 평지의 목관묘 석곽묘 등에 분포한 밀집 광역 고분군 중 1호분에서 칠초동검, 철검, 철부, 검형철기, 소동탁, 동경, 오수 등과 함께 출토된 '붓'이 그것이다. 다시 말하면 명도전(明刀錢) 오수전(五銖錢) 등과 같은 화폐는 물론 세형동검이나 철제무기, 일명 다뉴세문경으로 불리는 잔무늬거울이 사용되던 초기철기 시대 유물인 다호리 붓은 이 땅에서 직접 군장과 같은 식자층 증심의 정치지도자들이 필사(筆寫) 행위를 통해 문자(文字)를 사용했다는 증거임에 분 명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가 켜켜이 쌓여서 '무구정광대탑다라니경' 직지 ‘’ 팔만대장경 ‘’ 한글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보듯 ‘우리나라는 글씨의 나라' 라고 자부할 서예 문자문명과 문화가 오늘에 까지 이르고 있다. 그런 만큼 한국의 문자문명과 문화도 매우 다양하고 다층적이 다. 경남 울주의 천전리 대곡리나 경북 고령 양전동의 선사시대 그림문자를 토대로 2000 여 년을 넘게 사용해온 한자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글이 세 겹으로 포진되어 있는 것이 그 구체적인 증거다. 그 성격 또한 신화에서부터 역사 예술 정보까지 다양하다. 그림문자가 신화(神話)라면, 광대토대왕비는 역사이고, 김생 탄연 한석봉 추사 김정희의 글씨는 예술의 정화(精華)이자 훈민정음은 예술 철학 정보의 바다다.
전술한 바와 같이 서예는 또한 붓글씨이기도 하지만 문자예술이다. 그리고 문자는 조형 과 내용이 한 몸인 만큼 서예는 그림이자 시(詩)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선의 선비로서 시 서화(詩書畵)를 겸하는 것은 기본적인 자질이다. 그래서 글씨를 그 사람이라고 했는데, 문인사대부나 도학자 사자관의 글씨, 국왕(國王)의 어필, 스님의 선필은 모두 다른 조형 적 미감과 정신경계를 가지고 있다. '서조자연(書聲自然)'이란 말 그대로 문자는 또한 자 연에서 만들어 졌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한글창제원리에 그대로 밝혀져 있는데 자음(子 音)은 발음기관을, 모음(母音)은 천지인(天地人) 삼재, 즉 둥근 하늘을 ' .' 와 평평한 땅 을 'ㅡ' 사람이 서있는 모습을 'ㅣ'로 고전(古篆)의 점획 결구를 응용하여 본뜨고, 자모의 결합을 음양(陰陽)원리로 도모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글은 소리글자 이지만 기본 적으로 사물의 외적형상에서 내면의 실상을 추출해낸 것이다. 요컨대 한글은 의사전달 스 단이전에 우리의 정신과 마음 그 자체인 것이다.
3.
다시 논의를 붓이라는 도구로 돌려 논의를 확대하자면, 사실 물질과 정신의 문제는 인간이전에 동물이자 또 동물과 다른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할 때부터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 영원히 풀어가야 할 문제이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물질인 도구가 인간 문명의 패러다임은 물론 예술의 역사를 바꿔 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도구(道具)가 바뀌면 예술양식도 바뀌어 왔다. 새로운 예술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기존의 예술이 수명을 다하고 용도폐기 되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20세기 새로운 예술양식으로 떠오른 사진이나 영화가 이를 증명한다. 물론 이것은 새로운 정보전달과 저장도구로서 일종의 문자라고 할 수 있는 카메라가 발명됨으로서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20세기에 국한된 현상만도 아니다. 인류역사상 꾸준히 도구의 발명이 예 술양식을 바꾸어 왔고, 이런 예술이 새로운 시대와 사회를 사상적으로 반영해내고, 또 새 로운 도구와 만나면서 변증법적 발전을 도모해온 것이다. 500년 전 조선에서 벌어진 훈 민정음, 즉 한글창제 또한 동아시아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의 서예역사는 물론 커뮤니케 이션의 세계사적 시각에서 볼 때 그 패러다임을 바꾼 일대 사건이다. 전자가 비가시적인 빛의 음양원리를 시각화(視覺化)한 것이라면 후자는 청각(聽覺)에 호소하는 소리를 역리 (易理)를 통해 시각화(視覺化) 조형화(造形化)해냄으로서 정보의 전달 · 저장에 혁명적 (革命的)인 변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요컨대 시대와 사회가 바뀌면서 예술은 늘 변해 왔 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는 도구·재료와 문자변화는 물론 필연적으로 작가 · 관객의 역할, 학문의 흐름, 사회 물정의 변화가 결부되면서 이런 양상은 기계화 산업화 사회를 넘어 정보화(情報化) 시대로 특징 지워지는 현대사회에 들어 더욱 다층적(多層的)이고도 복합적(複合的)인 양태로 우리 앞에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문자문명과 문화가 이번 전시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영되고 재해석되고 있는 것인가.
4.
"현대서예와 문자예술의 향방을 문제 삼는 <제1전시〉는 김양동, 최민열, 한태상, 허회태, 최정화, 김종원이 작가로 등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서예는 현대에서 어떻게 이해되면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화두로 동시대 서로 다른 입장의 작가들이 고민을 풀어 놓은 자리다. 문자라는 입장에서 김양동이 한글 한자는 물론 '빗살'과 같은 고고유물의 문양까지도 모두 소재로 차용하고 있다면 최민열 한태상은 한글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김양동 이 필묵과 문자이미지를 단순한 지필묵이 아니라 혼합매체와 재료를 수용하여 이미 미술 쪽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면 최민열이 전통적인 한글서예 고수를 통해 한글의 조형성을 현대감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또 한태상은 한글의 원형질적 접근을 통해 자음과 모음의 조형성과 그 창제 배경에 깔린 역리(易理)에 주목하여 문자를 해체하고, 또 이를 통해 씀 을 넘어 문자의 회화적인 조형효과를 극대화 해내고 있기도 하다. 이에 비하면 허회태는 감성서예를 문제 삼는 이모그라피를 모토로 문자의 점획으로 필묵의 이미지 효과를 극대 화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든 재료와 도구에 열려있는 김양동과 비교하면 필묵 의 순수성을 고집한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한편 김종원은 전통과 실험을 한 몸에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행초서와 먹의 농담을 극대화해서 단숨에 내려 갈긴 작품의 텍스트와 조형의 합치를 통해 작가내면의 유정유미 한 심리상태를 여하히 표출하는가가 그에게 있어 화두다. 또 이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작품으로 문자구조를 건축구조로 치환시켜 문자나 건축이 원리적으로 하나가 됨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작가는 문자의 의미를 형체와 내용은 물론 글자에 짝하는 소리에까지 귀를 귀울이고 있는데 한마디로 그의 서예는 선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서예가 붓글씨만이 아 니라 모든 예술에 열려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최정화다. 우선 그의 작품에서 지필묵이나 한 자 한글 등의 문자를 씀을 통해 보여주는 전통 개념의 서예가 전혀 포착되지 않는다. 설치 작가로 현대미술에서 조차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듯이 어떤 경계도 없이 모든 것이 작품 소재이자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있다. 플라스틱 바구니나 버려진 현수막을 가지고 문자 조형을 새삼 문제 삼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문자 메시지 보다 소재 그 자체가 지닌 자연 에 대한 현대문명의 폐해를 더 직설적으로 강하게 웅변하고 있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하겠다. 꼭 읽어야만 글자고, 꼭 들어야만 소리인가를 우리한테 되래 묻고 있는 것이 이 작가의 작품이다.
5.
제2전시로 내건 “김경호 현대사경”은 그 자체가 파격이다. 사실 조형실험을 중점적으로 문제 삼고 있는 현대서예에서 시종일관 똑같은 필체로, 그것도 소해중심의 사경서체가 각 광받을 리는 만무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매우 시대착오적일 것 같은 사경이 전혀 다른 차원에서, 그러나 여전한 전통필법으로 김경호를 통해 재해석되면서 사경이야 말로 21세 , 기 지금 우리시대 가장 매진해야 될 최고 문자예술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물론 그 저력이 나 내공의 토대는 일차적으로 사경자체가 지닌 종교성, 즉 부처님 그 자체로 간주되는 '말 씀'을 배끼는 행위가 곧 공양인 만큼 사경행위에 배태된 삼엄한 정신, 즉 신심(信心)이 지루하다고 생각되는 조형을 이미 장악하고 나오는 것과 같은 데에서 찾아진다. 하지만 작가 김경호가 고대사경의 실체를 분석 재현해내면서 이 시대 사경의 가치와 의미를 미학적 으로 승화해내지 않았다면 애초부터 안되는 일이기도 하다. 예술보다 차라리 종교라고 해야 될 것이 김경호의 사경이다.
제3전시의 “다호리 '토기 & 창원문자사료”는 말 그대로 다호리의 토기 문명과 역사 속 의 창원의 일상문자문화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문자라는 것이 예술이전 에 일상에서 먼저 노비문서나 사송사건, 호구단자와 분재기 등의 정보나 기록으로, 또 혼자가 아닌 여러 장르와 뒤 섞일 때 제대로 살아있을 수 있음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장이다. 또 한반도 남부 갈 숲의 나라로 생각되는 다호리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 파편 모음을 통해 이천년 전 오늘을 '붓 들고 살아갔던 다호리 부족국가 사람들을 생각해보 는 자리이기도 한 것이다. 특히 연안김씨 가전 고문서는 한 가문이 다호리에 터 잡은 이래 수 백 년 동안 지탱되어 오늘에 이르는 과정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사 회 역사와 삶의 복원의 대전제는 이런 실증적인 문건을 통해야만 제대로 될 수 있음을 증거하는 곳이다.
이런 맥락에서 제4전시인 “경남서예 현재 "를 보면 그 자체가 매우 대조적이다. 애초 실 용과 예술 신화로 동시 출발한 서예가 현실생활의 실용을 떠난 순수예술 그 자체로만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 가에 대한 냉엄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경남을 대표하는 문제 작가라고 하지만 한국현대서예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미 예술의 주도권이 서화(書畵)에서 미술로 바뀐 20세기 한국의 근현대 서단에서 여 전히 전통고수만이 오히려 21세기 새로운 서예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작품이 있 는가하면 제1전시>의 현대서예와 문자예술의 향방”에서와 같이 우리시대 여러 시각예 술과 같이 문자해체와 필묵(筆墨)의 물성(物性)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조형실험을 감행하 는 데까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시대 작가들의 현대적 서예미의식의 적나라한 모습, 이를 테면 전통적인 글쓰기가 지닌 경계문제, 또 고답(高 踏) 숭고(崇高) 엄숙(嚴肅)한 전통바탕의 고전적인 글쓰기와 현대적 글쓰기 사이의 충돌 현장이 가감 없이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고전적 글쓰기의 도전에서 드러나는 한계성과 미래전망을 살피고 현대적인 글쓰기의 철학은 무엇이어야 하는 가를 확인하는 자리가 바 로 여기가 될 것이다. 요컨대 서예 고전의 재해석과 의미전달과 같은 서미의식(書美意識) 의 현대적 발현관점에서 그 일단의 성과는 이수희 윤관석 승윤상 한상열 신재범 권용완 조범재 박금숙 박원재 허인수 등에서 찾을 수 있다면, 신사고에 입각한 서예적 표현의 새 로운 모색이라는 관점에서 윤효석 이병남 곽정우 이중호 이병도 고상준 박정식과 같은 작 품이 주목된다. 특히 한글에 국한한다면 정문장 조현판의 작품에서 그 역사성과 현대적인 재해석의 성과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6.
마지막 제5전시인 “문자, 현대미술을 만나다”는 평면과 입체, 설치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현대미술 작가들이 문자가 태생적으로 지닌 원형질적 요소, 이를 때면 점획과 같 은 절대조형 미감이나 문자를 포괄하는 부호적 요소, 그리고 신성성(神聖性)과 같은 신화 적 요소를 회화 설치로 재해석 해내고 있다. 김동환 황무헌 김영성 강주연 하춘근 나홍준 유진수 등의 작품이 말해주듯 사실 우리시대는 모든 소재가 미술 아닌 것이 없을 정도로 범위가 끝이 없다. 하지만 유독 문자를 포함한 서예만이 현대미술의 변방으로 소극적으로 취급되어온 우리시대 미술문화에서 문자를 만났다는 자체가 매우 큰 의미가 있을 수 있지 만, 서예 즉 붓글씨와 현대미술로서의 문자예술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 가 를 보여주고 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이런 입장의 문자예술은 사실 서예와 같은 문자를 다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서예와는 전혀 다르다.
〈제1전시〉 “현대서예와 문자예술의 향방” 을 봐도 제4전시인 “경남서예 현재를 봐도 출발점이나 지향점이 하나 되는 곳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서화가 본래 둘이 아 닌 하나였지만 서예와 미술로 분리된 이래 근 백년간 두 분야가 너무 멀어졌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문자 현대미술을 얼마든지 만나지만 여전히 서예는 서예이고, 현대미술은 현 대미술 일 뿐임을 확인 하는 자리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본 전시인 〈〈2009 문자 문명전〉〉의 평생화두가 여기에 있다면, 이 시점에서 한국 문자문명의 새로운 창을 여는, 또 우리 문자문명 내일의 씨알을 품어내는 역설이 잉태되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